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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대학생 서울 숙소-중앙일보(2014.3.1)

작성자 : 
등록일 : 
2014-03-01
조회수 : 
5160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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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폰으로 연애 ""응사 커플"" 수두룩 …

 

                             음주 적발되면 퇴사

                                                                       

 

 

                                                                                        중앙일보 2014.3.1

 

 

 

 

 광주·전남 대학생 서울 숙소 ""남도학숙"" 20주년

본관 옥상에서 포즈를 취한 2014학년도 남도학숙생들. 20년 전 선배들처럼 학숙에서 추억을 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 기숙사로 돌아오니 한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예요. 너무 예뻐서 줄을 대 만난 뒤 방마다 설치된 인터폰으로

밤새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주변 공원에서 데이트도 하고요.

같은 숙소 다른 층에 살던 그 여대생이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임근석(47) 포스코ICT 이사가 서울대
경영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4년 평생 배필을 만난 사연이다.

그러니까 지방 출신 학생들이 서울 지역 대학으로 진학해 한

숙소에서 생활하다 눈이 맞아 결혼에까지 골인했다는 줄거리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의 신촌하숙 얘기

같다. 응사에선 경남에서 올라온 삼천포와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윤진이 맺어지지만 임 이사 커플은 동향(同鄕)이다. 임 이사가

“고향이자 집 같았던 곳”이라고 표현하는 서울 대방동 남도학숙.

광주·전남 출신 대학생들의 서울 기숙사인 이곳이 올해 3월로 20

주년을 맞는다.

 지난달 18일 찾아간 이 학숙 1층 로비는 새 학기를 맞아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고향에서 보낸 택배로 가득했다. 김완기(70)

학숙 원장은 “94년 당시 광주시장을 비롯한 공무원과

기업인에서부터 농민·학생·주부까지 17만 명이 성금을 모아 마련한

숙소”라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고향의 도움으로 배우고 있다는 애향심을 갖고있다”고 소개했다.

20년간 거쳐간 인원만 9000여 명. 이 학숙 출신 중엔 국가고시

(변리사·공인회계사 포함) 합격자만 156명이 나왔다. 의료계(65

), 언론계(35)도 활발히 진출했다. 94년 학숙에 들어왔던

조교식(47) GS칼텍스 업무팀장은 “입사 당시엔 월 10만원을

냈다”며 “학숙에서 주는 밥이 맛있어서 각 대학으로 흩어지는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 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이 내는 월 비용은 14만원이다. 지난해 이곳에 들어온

김명호(23·건국대)씨는 “1학년 때 학교 기숙사에 지내면서 6

개월마다 식비를 빼고 200만원씩 냈었는데 하숙이나 자취는

물론이고 대학 기숙사비보다도 싸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남도학숙에는 850명의 학생이 살기 때문에 응사의 신촌하숙과

 

달리 관리가 빡빡하다. 오전 6시에 기상 음악이 울리고, 자정까지

학숙으로 돌아와야 한다. 응사 하숙생들이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이던 것과 달리 학숙에선 음주를 하다 적발되면 퇴사해야 한다.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식당에 잔반통도 없다. 1회 진행하는 명사

초청 강연 참석도 필수다. 규정을 많이 어겨 벌점이 일정 기준 이상

쌓이면 재입사를 제한한다. 94년 학숙에 들어왔던 서봉하(45)

전주지검 검사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느슨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준 당시 원장 선생님에게 조언을 듣곤 했다”며

“학숙 시절 몸으로 익힌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검사 생활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였다. 학숙

원년 멤버인 주웅(42) 이화여대 여성암센터 교수는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어 ‘삐삐’로 메시지를 전하던 시절이다 보니 학숙

인터폰으로 여학생 방에 전화를 거는 ‘방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주 교수는 “학숙생끼리 커플이 되더라도

고향이 비슷해 한 다리 건너면 아는 경우가 많아 부모님들 귀에

들어갈까봐 조심조심 연애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2002

이곳에서 지낸 남현정(33·여)씨는 “지하철역에서 학숙으로 오는

길이 어두침침해 여학생들이 불안해하자 예비역 장교 출신인 학숙

장학사 선생님이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다 보디가드를 해주곤

했다”고 술회했다. 남씨와 결혼한 논술학원 강사 이정주(32)씨는

“지금의 아내와 학숙 시절 ‘타향 살이’ 고달픔을 나눈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 점수를 땄다”며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미팅도 많이

했지만 학숙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만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학숙 출신 김수철(30) 군인공제회 사업개발팀

사원은 “통금이 지난 밤늦은 시간에도 자물쇠가 걸린 출입문

틈으로 몰래 드나들곤 했다”고 전했다. 김옥주(26·홍익대)씨는

2011년 학숙 친구들과 과테말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며

“학교를 마치면 주로 학숙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말고사 기간에 불을 밝힌 남도학숙의 야경().

 

호신술 동아리 회원들이 2002 5월 열린 기숙사 축제에서 합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