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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회[유럽배낭여행] 수기

작성자 : 
등록일 : 
2011-08-23
조회수 : 
4274
추천 : 
0

 

2011년 여름, 또 하나의 별책 부록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지역학전공 2학년
박희원

 한달이 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이제는

 한국, 원래 우리들의 자리로 돌아와 그 시간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까. 아직은 이곳에서 느끼고 있는

 오감이 한참이나 무뎌진 느낌이다. ‘정리’라는 것을 해내고 싶은데

 머릿속에 쉽게 문장은 떠오르지 않고 망설이고만 있다.
 
 내게는 다이어리가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지난 3년 동안 써온

 다이어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에서의 한 달 동안의 여행을

 기록한 파란 하드커버의 다이어리이다. 내 인생의 본권이 전자라면,

 꿈을 꾼 것만 같은 나의 2011년 여름은 별책부록처럼 그곳에 기록

 되어있다. 한국에서 쓰던 다이어리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현실로

 하루 빨리 돌아가야 하지만, ‘이 촉감이 익숙해서’, ‘보고서 쓰려면

 어차피 계속 들추어 보아야 해서’, ‘손에서 놓으면 너무 허전해져

 버릴 것 같아서’, 이유들을, 핑계들을 늘어놓아본다.
 
 본권에서의 삶이 지칠 때, 언제고 꺼내볼 별책 부록.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우리가 지나온 여정은 다른 팀원들이 많이

 ‘보고’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안에서 느꼈던 상념들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내내 박스 속에 갇혀있던 여니와 수니가 기성오빠, 지경오빠에게 씌워

 졌다. 거대한 이 두 짐들은 인기가 좋았다. 빅벤 앞 다리를 건너가는

 길에 만난 수없이 많은 인파들, 순천 출신의 한국인도 있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고 ―  2018년, 스물일곱,

 혜지 언니의 독설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렇다. 또 시간은 흘러 이

 추억을 고스란히 함께 한 우리는 또 저마다의 인생을 지나며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만나게 될지 모른다. ― ‘하나, 둘, 셋’을 위치며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고, 여니 수니 탈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과도하게

 즐거워하던 핑크색 티셔츠의 남자도 있었고, 쿨하게 Good luck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사진, 영상을 찍어

 나가며 공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작 Friday night의 공원은 너무도

 휑하고 왜가리(?)와 오리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공간에서, 모르는 이들에게 ‘Hello, next year EXPO in

 Korea. See you next year""라고 외칠 수 있는 시간, 또 다른 나를

 만났던 셈이다.
 

  -  7월 8일 금요일(여행 4일차), 영국 런던
 
 타워에 올라 만난 빈의 야경은 이제껏 보아온 어느 도시의 야경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자리 잡은 카페는 아주 느린 속도로

 돌아가며 모든 방향에서 빈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수 바퀴를 돌며

 빈의 야경만이 갖는 매력에 빠졌다. 레모네이드를 섞은 맥주와 함께

 내려다본 빈의 야경. 한 시간 남짓을 멍하게 바라다보았다. 카페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팝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달려가는 자동차 하나를

 시선으로 뒤쫓다 문득 누군가 나처럼 나를 아무런 의미 없이, 사심없이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하고, 옆에 앉은 수지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어둑어둑한 길을

 걷는 상상을 하고······. 그저 말없이, 조용히, 빈과 그리고 또 다른

 나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  7월 26일 화요일(여행 22일차), 오스트리아 빈
 
 여기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가는 야간열차 안. 덜컹거리는 몸체와

 어느덧 해가 져 어두운 창 밖. 몸을 일으켜 세울 수도, 쉽게 돌릴 수도

 없는 아주 협소한 공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세안을 해야 했던

 세면실. 모두들 짜증보다는 너무나 새로운 환경에 어안이 벙벙하고

 유쾌한가 보다. ― 적어도 나는 그렇다. ―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가고

 있다. 역무원이 로마의 한 역에 불이 나서 이 기차의 종착점인 Roma

 Termini까지의 스케줄이 딜레이 될 수 있음을 알려왔다. 창 밖으로는

 가끔씩 가로등 불빛이 스쳐 지나가고, 소등한 관계로 켠 나의 휴대폰

 손전등 불빛과 펜, 노트의 스프링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열차 두 칸에 이어 5명씩 나뉘어누웠다.

 기차 벽에 대고 똑똑 노킹을 하면서 벽 넘어 오는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깔깔거리며 웃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즐겁다!


  -  7월 30일 토요일(여행 26일차),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하는

     야간 열차 안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오르고 올라 내려다본 곳에는 붉게 빛나는

 피렌체가 있다.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간다. 밖은 밝디 밝은

 대낮이지만 앞사람 그림자로 계단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위를

 비추는 오래된, 언제고 켜져 있을 것만 같은 전등 하나를 무심코

 바라본다. 지상에 내려갈 때가지 함께한 그 잔상. 문득 상상해보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두오모. 이상할 것도 없는 어둠이지만 멈칫

 하게 되는 건 왜일까. 공포라기보다는 이곳에 다녀간 이들이 저마다

 남겨놓고 떠난 애틋함 때문일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숨에 올라

 한눈에 담은 피렌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가죽시장에서

 사려던 선물을 사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  8월 4일 목요일(여행 31일차), 이탈리아 피렌체
 
 내일은 드디어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 로마로 떠난다. 이제야 여행

 중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데, 벌써 ‘끝’이 눈앞에 다가왔다.

 모두의 편지에 썼듯이 2011년 여름은 탐미회로 인해 아름답게 빛났다.


 -  8월 5일 금요일(여행 32일차), 이탈리아 아씨시
 
 
 여행 보고서를 쓰기에 앞서 탐미회 선발을 위해 썼던 여행 계획서를

 다시 들추어보았다. 나의 여행은 얼마나 계획한 것과 가까웠을까.

 계획서에서 보고서로 넘어오면서 시제는 미래형에서 과거형이 되어

 있다. 여행 계획서는 나의 여행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여행이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다.


 먼저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여행 초기에는 10명이라는 사람이

 많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 10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서서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시야 안에서 이들은 단지 서로의 사이에 좁은 거리를

 두고 서있는 ‘하나’로 보였다. 어느 누구도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크게 아프지도 않고, 타인으로부터 해를 입지도 않았던 여행이었기에

 큰 스트레스 없이 밝은 감정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낯설었던 것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 한국어 간판이

 아니라 항상 함께한 이들이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여실히

 느끼게 된다.
 

 또 하나의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들이다. 이들은 살아서 우리와

 대화를 하기도 했고, 그림 속에서 온화하게 웃고 있기도 있고, 남겨둔

 음악으로 우리와 소통하기도 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해서,

 ‘그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그 속에서 ‘그들’과 ‘우리’의 구별이

 사라진 여행. 우리는 그 나라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고, 어떠하고, 어떠할지에 관해 다방면으로

 공부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었다. 그리고 직접 그곳에 가서 우리는 ‘그들’이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나’라는 사람이다. 유럽에서의 일기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뽑아놓은 위의 글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나에게

 있어서 중세시대의 높다란 첨탑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에게는 그 시간, 그 공간 안에서 나와 함께 했던

 이들과의 이야기, 혹은 나 자신과 나눈 이야기가 가장 의미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여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작년 13기의 보고서도 읽어보았다. 1년 전의 그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심지어는 비슷한 단어로 글을 풀어내고 있다. 나만의 참신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당혹스러워지려는 찰나, 시간을 초월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그들과 나의 교감이라고 생각하니 조용히 미소 짓고

 만다. 다른 팀원들의 보고서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들은 나와 같은

 시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도 다음 기수들이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With what do you leave?""
 ""Memory, good memory.""
 ""Safety, Journey, Bye""

 - Italy, Roma. 여행 마지막 날,

 

 맥도날드 창문 너머로 필담을 나눈 외국인의 질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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