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실크로드 역사 기행 탐방단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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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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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트, 실크로드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의 같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처음에 기대했던 배낭여행과는 달리, 그쪽의 치안이나 여러 상황 등을
고려해 패키지로 가게 되었다. 패키지 여행이 주는 편안함을 떠올리며,
우루무치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우리에게
쉽고 편한 여행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고생문이 열렸다”는 가이드의 말을 시작으로, 삼엄한 출입국 심사
와 조금은 이상한 냄새를 맡으며 실크로드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7박 9일 동안 비단길에 해당되는 많은 도시들을 거쳤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도시는 4개였다. 바로 투루판, 하미와 선선, 둔황이다.
이 네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1. 투루판
건조 기후라서 ‘건포도’가 유명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갔던
곳들 중에서, 투루판이 가장 ‘신장 위 구르 자치구’의 모습이 살아있는
도시라고 느껴졌다. 한족 이 아닌 위구르족이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며,
각이 진 모자를 쓰고 집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순박한
표정들.
투루판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개인적으로
야시장에 놀러갔기 때문이다. 가서 중국에 가 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양꼬치를먹으면서 진솔한 이 야기를 나눴다.
조선족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주변인’의 외 로움과 괴로움, 같은 민족
으로서 너희들이 진심으로 잘 됐 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문제가 ‘운명’으로
놓여 있 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조금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은 대 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평생 중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를 놔주지 않았다.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낸 것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 외에도 투루판은 정말 매력 있는 곳이었다. 가게의 상인들도
거짓말을하지 않고 순박했다. 관광객이고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면,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 뿐 아니라 건포도를 재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건물 자체에 건포도를
말리는 곳이 있는 등 일상적 풍경도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어느 공원에 가면 벤치가 있고 천장 쪽에 넝쿨이
있는 것처럼, 투루판에서는 초록색 청포도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아직도 투루판을 떠올리면 ‘연두색’이 떠오른다. 더워도 모든
것이 즐거웠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던 투루판이 벌써 그립다.
2. 하미 & 선선
사실 하미와 선선은 실크로드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느낌이다. 그래서 가기 전에 별 다른 기대를 안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하미와 선선에서의 일정이 가장 재미있었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본 실크로드의 풍경들을 가슴 깊이 느끼기도 했고,
낯선 땅에서 느끼는 여행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실크로드는 사막길, 초원길, 바닷길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막과 초원을
둘 다 접할 수 있었다. 우선 선선에 있는 쿠무타크 사막은 사구가 작고
많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막차’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데, 전동차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구들의 경사가 심하고
여러개가 있기 때문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 환경을 이용한 관광 상품에 감탄이 되기도 했고, 사막차
자체도 너무 재밌었다.
보면서 는 웅장한 자연이라는 느낌뿐이었는데, 실 제로 본 사막은 내
상상보다 너무 아름다웠다. 사막 꼭대기에서 바라본 ‘사막’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꼭 사막에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에는 선선에서 조금 달리자 하미가 나왔다. 그리고 금세 빠리쿤
초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과 초원이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천혜의 자연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중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자연 환경을 가지고 관광화 시키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
나귀 마차나 낙타 타기 체험 등 동물을 이용한 관광 상품 또한 많다.
동물을 사용하면 인건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존재하는 자연은
분명 그들에게 귀중한 수입원일 것이다. 그것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말 못하는 동물들을 통해 돈을 벌면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과거의 영광과 조건적 환경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자연 환경과 문화재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빠리쿤 초원 또한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말 타기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너무 신기한
풍경이지만 이 사람들에겐 일상적이고 편안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에서 봤던 호주 등의 초원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몽골의 주거공간인 ‘게르’와 비슷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소수 민족 중 ‘카자흐 족’이란 민족이
아직도 유목생활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후가
게르를 설치해 정착했다가, 날씨가 안 좋아지면 이곳저곳으로 떠돈다고
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위구르족, 카자흐족, 회족등 다양한 소수 민족이
존재한다. 그런데 더 신기한것은 이 소수 민족들이 각자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고, 생활 방식도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위구르족이 일반적으로
정착 생활을 하는 것에 비해 카자흐족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와보지 않으면,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이 소수 민족들의
삶이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족과 너무 다르고, 소수 민족 끼리도 상이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09년에 위구르족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들은 후에는,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참 아픈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족이 소수 민족 차별 행위에 반발하여 유혈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사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영토 상 중국에 귀속되어
있을 뿐이지, 생김새나 언어, 종교에 있어서 과연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차이를 보인다. 빠리쿤 초원에서 말을 몰던
사람들도, 중국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동 쪽에 가까운 생김새를
가졌다. 또한 그들은 중국어로 ‘셰셰’라고 하는 것보다 ‘라흐마트’라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라흐마트’는 위구르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그들은 독자적 언어를 쓰면서 자신들 나름대로 중국
정부와의 개별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까지 소수
민족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야할까? 그 물음이, 그들의 순수한 미소에
자꾸 겹쳐졌다.
3. 둔황
흔히 둔황은 중국 예술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막고굴’만으로도 가치를
가진다고 한다. 우리 역시 막고굴에서 그 놀라운 규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둔황까지 가는 길이다.
둔황은 가는 길이 굉장히 버라이어티했는데, 유원에서 둔황까지 11시간
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야 했다. 그런데 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이 쉴 새 없이 덜컹거렸다. 그 뿐 아니라 버스가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서서 기약 없이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
랐던 것은, 만약 우리나라였으면 운전자들이 내려서 화를 내고 경찰등
에서 빠른 조치를 취하려 했을 텐데 그곳의 운전자들은 느긋하게 누워서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누구도 화를 내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의자
좌석을 뒤로 젖혀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가량을
기다리자 조금씩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그 열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면서 화장실이 급할 때면,
버스를 세워 자연을 벗 삼아 해결하곤 했다. 처음엔 그것이 너무 부끄
럽고 쑥스러웠는데, 몇 번 반복되자 아무렇지 않은 우리를 발견하고
또 놀랐다. 이 뿐 아니라, 밤 열한시가 넘어서는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물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둔황은 연 강수량이 13mm 정도 밖에 안 되는
건조한 전형적 사막 도시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태어나서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것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우리가 봤을 땐 일반적인
비 오는 날씨였다) 비가 쏟아지자 둑 같은 것이 범람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 비로 범람까지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둔황은 비가 원래 오지 않아서 도시에 배수구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땅이 물에 잠겨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가던 길에서도 버스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 가이드
아저씨가 내려 물길을 터서 무사히 그 길을 지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사실, 처음 해보는 경험에 너무 신이 났다.
그리고 우리끼리 농담으로 ‘혹시라도 패키지 여행이라서 밋밋할까봐
이런 시련을 주나보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이런 경험들이 다 재밌고
좋은 추억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에 말했던 막고굴, 그리고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사막인 명사산,
야시장 등 둔황에는 정말 ‘관광지’라고 붙일만한 것들이 많았다.
왜 실크로드 도시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내 기억 속에 둔황의 관광지보다는 버스에서
고생했던 기억, 유원으로 이동해 탔던 야간 열차의 기억이 더 남아
있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많은 것을 얻어올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한번쯤 꼭 실크로드를 가보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생때
세계사란 과목을 가장 좋아했고, 특히 이슬람의 상인들이 비단길을
건너 중국 상인들과 교역하는 대목은 너무 재밌었다. 그 역사적인
순간들은 이제 모두 관광지로 변모했고, 그나마 그때의 풍취를 느낄수
있는 것은 이슬람 사원에 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는 소수 민족들
의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과 명성을 아직도 누리고 있는
‘실크로드’에서는, 사람이 곧 그때 그 역사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 사람들은, 실크로드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천 원’을 외치며,
우리에겐 18000원 밖에 안 되는 100위안을 수표처럼 계산대 맨 아래
쪽에 집어넣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한국에선 쥐뿔도 없으면서
이 나라에 와서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조금은 약은
모습으로 관광객을 대하는 그 속보이는 모습 이면에 언뜻 스치는
그들의 깨끗한 웃음과 여유가 나를 반하게 했다. 무엇보다 소수 민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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